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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뼛속까지 친일한 자가 죽어 현충원에 뭍힌단다.

| 조회 1776 2011.11.28 17:44

유재흥. 아비와 함께 일본육사 졸업 후 조선인 학병 지원 촉구연설을 한 뼛속까지 친일이었던 자.
해방 후 육이오전쟁에 국군이 되어 28세에 별을 달고 참전, 연전연패하여 맡은 군마다 궤멸당하게 하고, 어이없게도 자기 부대가 중공군에 포위되자 경비행기타고 후방으로 도주해 버리는 등 행동으로 미군 밴플리트 사령관에게 작전권을 박탈당한 자.
제주지구 사령관으로 4.3항쟁 토벌사건을 주도한 자.
한국군 장성이었으나 한국말에 서툴러 일본어로 통역해 주어야 할 정도로 여전히 일본인의 정체성에 빠져있던 자.
그런 자가 한국군에서 중장까지 오른다.

예편 후 10년 간 외국대사까지 지내고, 국방부장관이 되더니, 석유공사사장, 석유화학공업협회장을 지내고,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 부회장과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전시작전권 환수반대 운동에 적극나선 자.

그런 자가 죽었다. 지난 11월27일 90살로 죽은 것이다. 
군번 3번. 군은 합참의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합참장으로 장례를 치룰 것이라 한다. 

그리고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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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부하들의 생명은 모른체하고 자기 살길만 찾아 도망만 다니던 유재흥.
전쟁사에 있어 나라를 부끄럽게 만든 군인이었지만,  왜곡된 대한민국에서 그는 승승장구하고 천수를 누리고 그 기간동안 전작권 회수 반대 등 온갖 해악을 다 끼치고 죽었다.

그런 그가 현충원에 매장된다. 
우리나라 현충원은 친일 부역자, 공산이념 부역자, 독재자들의 안식처가 된지 오래지만, 이건 아니다.

오히려, 진실로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다른 곳으로 이장하는 것이 빠르지 않나 생각된다.
그런 후 폭파시켜버려야 나라의 정신이 올바로 설 수 있을까?

유재흥.JPG 
1950년 9·28 서울수복에 이어 10월 평양에 가장 먼저 입성한 유재흥 장군(앉은 이)이 육군 2군단장 시절 참모들과 찍은 사진. 그는 51년 7월 시작된 정전회담 때 남한 쪽 옵서버로 참관했으나, 일본 육사 출신인 탓에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해 통역을 대동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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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대 최고의 졸장을 꼽으라면 여러 장수를 꼽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이 장군을 능가할만큼 졸장은 없어보입디다. 자, 유재흥의 업적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1. 일본 육사 출신 친일파 
 
생계형 친일 운운하지만, 전 기준을 하나로 봅니다. '알고 친일했냐? 모르고 친일했냐?' 일본 육사가 까막눈 모아서 가르치는 데도 아니고, 말 그대로 엘리트들 모아서 엘리트 교육시켜주는 데입니다. 말 그대로 유재흥..친일이 뭔지, 민족이 뭔지 아는 넘입니다. 뭐 일본 육사나와서 친일한 박정희, 유재흥같은 말종들도 있지만, 독립운동에 투신한 김경천 장군같은 분 도 계시죠. 
 
말 그대로 태생부터 말종입니다. 
 
2. 제주 4.3 항쟁 학살의 주역! 
 
대부분의 친일파들이 조국광복 이후, 친미 반공주의자로 둔갑했듯이, 유재흥도 다를 바 없습니다. 이승만 정권 시절 대령으로 활동합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전공이 제주도 4.3 항쟁의 학살 장본인 이란 겁니다. 
유재흥과 그의 직속부대만 해도 1949년 2345명의 `유격대` 를 살해했고, 1608명의 민간인을 살해했습니다. 제주도 인구를 단숨에  1/3로 줄여버린 제주 4.3 항쟁 학살의 주역 유재흥..근데 저항할 힘이 없는 자국 민간인에겐 이렇게 용감한 양반이, 적군에겐 왜  그리 졸전만 거듭한건지? 
 
3. 의정부 전투에서 국군 제 7사단을 해체시켜버린 장본인!! 

뭐 영천 전투의 영웅 운운해샀는데..같잖지도 않을 뿐입니다. 제공권을 장악당한 북괴군이 설령 영천을 장악했다해도, 무슨 수로  국군과 UN군의 보급선을 장악한단 말인지? 그리고 대구로 북괴군이 진출한다해도, 대구를 장악한다는 보장이라도 있는지? 
당시는 심지어 경찰병력 수천명이 대구사수를 외치며 궐기했던 상황입니다. 뭐 원체 국군이 이긴 전투가 없다보니, '영웅' 하나가  반드시 필요했던 상황의 산물로 이해해둡시다. 

정작 웃긴 건 유재흥이 6.25 초반에 거둔 주옥같은 패전들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의 7사단이 승승장구하면서 영천까지  "뒤로 진격" 해왔을까요? 아뇨. 의정부에서 유재흥은 무려 자신의 7사단을 "해체" 시켜버리는 기염 을 토해냅니다. 사단장일 땐  사단해체, 군단장일 땐 군단 2회 해체! 참으로 멋지죠? 
 
4. 국군 2군단 해체의 장본인! 1.4 후퇴의 원인제공자! 

영천에서 미 8군의 우익이던 유재흥의 제 2군단은 '해체' 되어 버립니다. 웃긴 건 중공군 38군과 42군이 유재흥의 병력을 둘러쌀때까지 유재흥은 그걸 전혀 몰랐다는 것이죠. 방심하고 있던 국군 제 2군단 앞에 38군과 42군이 갑자기 꽹가리와 징을 두들기고  괴성을 지르며 나타나자, 당황한 제 2군단은 문자 그대로 자멸합니다. 

아무리 승세에 있다지만, 제공권까지 완벽히 장악하고  있던 국군과 UN군이 중공군 수십만이 그들의 턱밑에 총검을 들이댈 때까지 전혀 몰랐다니..참으로 한심하죠? 뭐 그건 국군과  미군 전체 지휘관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웃긴 건 UN군이 2군단 괴멸 후에 터키 여단을 덕천으로 파견합니다. 

비록  1개 여단으로는 중국군의 대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철수했지만, 그래도 터키여단은 조직을 유지한 채로 탈출에 성공합니다.  1개 여단은 무사히 빠져나오는데, 1개 군단은 깨끗이 군단해체..참으로 용장 밑에 약졸없죠?껄껄. 

결국 매카서(맥아더)는 크리스마스 대공세의 중지와 철수를 선언하고, 후퇴합니다. 그 와중에 미군 제 2사단은 중공군의 매복에  걸려 대패합니다. 결국 이 후퇴행렬은 서울까지 내어줬고, 이 서울을 내어준 날이 바로 1월 4일..고로 이 후퇴를 1.4후퇴라고  부르게 되죠. 
 
5. 국군 3군단 해체의 장본인, 군단장이 군단을 버리고 연락기 타고 도망가다!! 

간단합니다. 인터넷에 국군 최대의 참패를 검색해보십시오. 곧바로 '현리 전투' 가 튀어나올겁니다. 그 주역이 바로 유재흥 
입니다. 현리에서 유재흥의 3군단은 중공군에게 포위당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제공권과 보급, 화력에서  UN군과 국군은 절대 우위 속에 있었단 겁니다. 그리고 제 3군단의 전력은 거의 온전한 상태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유재흥은 무려 포위되자마자 곧바로 연락기타고 자신의 군단을 버리고 도망 갔단 겁니다. 거기에 덤으로 더하자면, 항시 보급상태가 엉망이던 중공군은 제 3군단의 장비를 대량 노획해서 향후 전투에 유용하게 써먹었다 는 겁니다. 

군단장이 먼저  도망가버리자, 군단 수뇌부와 휘하 사단의 지휘부도 역시 군단장을 본받아 도망갔고, 결국 3군단은 전투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모두 도망갔습니다. 중국군이 얘들을 가만 놔뒀을까요? 문자 그대로 괴멸적 타격을 입습니다. 웃긴 건 상당수 병력이  사로잡혔단 것인데, 뭐 국군포로를 인민군으로 재무장되어, 전선에 내보낸 것이나, 인민군 포로를 국군으로 재무장시켜 전선에  내보낸 건 양군 모두 동일하니, 알아서 상상하시길..껄껄. 참으로 쓰리쿠션을 넘어선 1석 8조쯤 되는건가요?껄껄. 
 
6. 그러고도 변명과 거짓말만 늘어놓는 유재흥 

먼저 유재흥이의 변명을 간단히 들어봅시다. 유재흥은 휘하 사단장 최석에게 30연대를 보내서 요충지 오마치 고개를 점령하라고  했으나, 미군이 '관할권' 을 들먹이며 오마치에서 병력을 빼라고 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유재흥은 별수없이 병력을 뺐고, 덕분에 현리에서 포위당하여 군단이 해체됐다는 겁니다. 

유재흥이 후에 국방부 장관까지 해먹은 관계로 국방부 편찬 '한국전쟁사'와유재흥의 회고록에선 이 점을 들어, 유재흥은 책임없단 식으로 몰고갑니다. 

그러나 정작 당시 30연대장 손희선은 이 주장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저는 오마치 돌파 명령을 사단장으로부터 받은 적이 없습니다. 오마치 고개 북쪽 고지에 배치되어 군단의 철수를 엄호하도록  명령받았을 뿐입니다." 라고 합니다. 껄껄...냄새가 모락모락 나죠?껄껄.. 

뭐 미군이 군단 버리고 연락기타고 도망가라고 유재흥 군단장님께 권해줬나보죠? 껄껄...아~여기에 대한 변명도 있습니다. 
 
바로 유재흥은 '도망을 간 것이 아니라, 연락기를 타고 작전 회의에 참석하러 갔다.' 는 것인데, 아니 군단이 포위된 마당에 
군단장이 군단놔두고 작전회의? 파울루스는 뭐 작전회의 노이로제가 있어서 6군 포위 상황에서 포위망밖의 작전회의 안갔나보  죠? 그나마 이것도 거짓말이란 게 드러납니다. 백선엽 장군의 저서 '밴 플리트 장군과 한국군' 의 136페이지 (주) 12번에 보면  이때 유재흥은 작전회의에조차 참석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껄껄..참 뻔뻔한 분이죠? 
 
7. 전시 작전권을 미군에 넘긴 장본인, 유재흥! 

전선을 간신히 마무리 지은 밴 플리트장군은 현리전투 패배의 책임을 물어 5월 26일부로 국군 3군단을 해체시키고 국군 9사단을 미 10군단에, 국군 3사단을 국군 1군단에 각각 배속시켜 버립니다.  이로써 한국군 군단은 1군단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미 8군은 한국군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뜻에서 육군 본부를 통해 한국군 부대를 지휘해왔으나 이후부터는 육본을 통하지 않고 국군 1군단을 직접 지휘 하게 됩니다.  당시 제대로 된 방어 한번 펼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무질서한 후퇴를 하여 전체전선을 붕괴직전까지 몰고 갔던 3군단의 한심한 패전에 대해서 미 8군사령관 밴 플리트의 분노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7-1. 밴플리트가 그렇게 열낸 또다른 이유 

사실 제공권을 완벽히 장악하고, 보급능력의 우위를 확실히 점하고 있던 UN군과 국군이었기에, 설령 포위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포위섬멸전' 의 모습은 나올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요충지 오마치 고개의 점령은 뼈아픈 것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퇴로' 가 막힌 상황이었지만,  '아직 포위된 상황은 아니었다.' 는 것입니다. 그리고 휘하 3군단은 완벽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완벽하게 장악한 제공권과, 항공보급능력을 비롯한 각종 보급, 그리고 미군의 지원 등을 업고 싸웠다면, 충분히  한번 해볼만한 전력이었다는 겁니다. 

이와 유사한 경우로, 가평 전투에서 영연방군은 국군 제 3군단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봉착합니다. 그때 영연방 27여단은 아예 완벽하게 포위를 당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완벽한 제공권 장악에 따른 항공지원과, 항공보급 그리고 효율적인 항전에 힘입어   오히려 중공군의 공세를 격퇴시켜버리는 데 성공합니다. 이로써 대통령 표창까지 받게되죠. 참으로 대조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재흥이 한국군 망신 하나는 톡톡히 시켰죠? 
 
8. 밴플리트와 유재흥의 '뻔뻔한' 대화 

밴 플리트 : " 유장군, 당신의 군단은 지금 어디 있소 ? " 
유재흥 :  " 잘 모르겠습니다. " 
밴플리트 : "  당신의 예하 사단은 어디 있소 ? 모든 포와 수송장비를 상실했단 말이오 ? " 
유재흥 : " 그런 것 같습니다. " 
밴플리트 : " 유장군, 당신의 군단을 해체하겠소. 다른 보직이나 알아보시오 ! " 
 
9. 이래놓고 국방부 장관까지 역임, 거기다 지가 넘겨준 전시작전권 환수 반대까지 하는 유재흥 

더 재밌는 건, 이래놓고 고개 뻣뻣이 쳐들고 국방부 장관까지 해먹습니다. 거기에 얼마 전에 뉴스에 다시 한번 고개 내밀더군요.  지가 3군단 해체시켜서 전시작전권 넘겨준 인간이, 뭘 잘했다고 전시작전권 환수 반대에 고개를 쳐드는건지? 전시작전권 환수의  찬반 문제는 둘째 치고, 지 책임으로 그래 됐으면 자결로서 책임지진 못할망정, 적어도 조용히 고개 파묻고 참회하며 살아야 하는  게 인간의 도리 아닌지? 껄껄 
 
10. 결론 

원균이 전쟁 끝나고 병판이라도 시켜달랬는지? 하지만 유재흥은 박정희 밑에 들어가서 또다시 고개 빳빳이 쳐들고 지금도 
살아있다. 파울루스는 제 6군을 말아먹었지만, 포위되자마자 도망은 안갔다. 하지만 유재흥은 자신의 군단이 포위되자마자 연락기타고곧바로 도망가버렸다. 그것도 전력이 온전한 자신의 군단을 버리고 대체 사단장일 땐 사단 해체시켜버리고, 군단일 땐 군단을 2번이나 해체시켜버리는 명장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을지? 그것도 
각각 유재흥의 2군단, 3군단 패전은 한국전 전략 자체에 심각한 차질을 줬다는 점. 그것도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 

유재흥..심히 농약먹고 인생 마감하길 진심으로 권한다는..껄껄 
 
출처 [부흥] 전쟁의 역사-네이버 역사 전문 카페 , 작성자 히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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