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일보 망소이님의 글. 2011.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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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보 총수와 진중권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곽노현 교육감 사건을 생각해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총수나 진중권이나 둘다 모두 필요하다.
둘다 옳다는게 아니다. 둘다 모두 필요하다. 그래야 진보는 좀 더 유연해질 수 있다.
"원칙을 지키자". 정말 좋은 말이다. 저 말에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상식을 지키자". 이것도 마찬가지다. 좋은 말이지.
그런데 현실에 실제로 적용하려면 주위상황을 반드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법에서도 정당방위나 긴급피난 같은 규정이 있는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예외적으로 살인이나 재물의 손괴도 인정해주는 조항이지.
현실은 이렇다. 우리가 동의하든 반대하든, 현실은 야만적인 힘이 움직이고 있다. 그건 그냥 팩트다.
인류가 아주 발전한 것 같지만, 원칙이나 상식 같은 것은 평등권이 일정하게 보장되는 어떤 그룹 내부에서만 통용된다.
특정 그룹의 외부에 속한 사람에게는 원칙이니 상식이니 하는 것도 다르게 적용된다.
여기서 특정 그룹이란 바로 현질서상 기득권의 크기를 말한다.
쎅검 씹쌔들과 도시민빈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원칙이나 상식이란 전혀 없다는 것에 여러분은 싫든 좋든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민들과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이나 상식이란 없다는 것도 동의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슬프게도 원칙을 지키고 상식을 지키는 것도 힘이 있을때나 할 수 있는, 일종의 "능력" 내지는 "실력"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인들이 타고 있는 민간인 버스에 총을 난사하거나, 텔아비브의 디스코택에서 자살폭탄을 감행하는 팔레스타인 전사들에 대한 뉴스를 들으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이스라엘이나 영미 주류언론들은 무고한 민간인을 마구 죽이는 짐승같은 놈들이라고, 원칙도 상식도 없는 놈들이라고 욕하지.
하지만 우리같은 딴지스들은 잘 알잖아? 전혀 어떤 의미있는 정규전도 벌일 능력이 안되는 필레스타인인들이, 도저히 가만히 앉아서 이스라엘에게 동족이 학살당하거나 말려죽임 당하는걸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벌이는 비대칭전투의 방식이라는 것을.
그 팔레스타인 전사들에게 원칙을 말하고 상식을 설파하려는 짓 자체가 테러행위일 수도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원칙이나 상식도 상대방 봐가면서 해야하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원칙과 상식을 지켜도, 상대방은 전혀 그럴 의사가 없다면 우리도 그들을 상대로 동일한 방식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노무현 정부때도 그랬다. 대북특검부터 사학법, 검찰개혁, 보안법철폐, 한나라당과의 연정제안까지, 그들과 무언가 논리적인 관계를 맺어보고자 했지만, 결국 모두 실패하였다.
우리가 원칙과 상식을 엄격하게 스스로에게 적용해서, 곽노현 교육감을 사퇴부터 시킨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다음번 보수인사가 비슷한 스캔달에 걸렸을때, 그들도 순순히 사퇴할까?
쎅검 씹쌔들이 현직 검사들의 성매매와 뇌물수수 혐의를 제대로 수사할까? 안하잖아.
우리가 아무리 모범을 보여도, 저들은 전혀 배울줄을 모르거든.
그래서 루쉰도 말했잖아. 물에 빠진 개는 죽도록 패라고. 물에 빠진 개를 패는건 좀 비겁한 짓이지. 상식에 어긋나지. 그래도 패야되. 살려놓으면 또 물어 뜯는걸 알면서 그냥 놔두는건 바보같은 짓이야.
노무현은 꼴통들에게 상식을 적용해서는 안되는데, 그 우직한 양반이 끝까지 그들을 포기하지 못하더라고.
어느 순간에는 이런 생각까지 들었어. 저 양반이 정말 사회정의를 세우는 일보다 자기가 착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기억에 남는 일에 더 집착하는게 아닌가 하는 원망 말이야.
난 차라리 못되고 독한 사람으로 찍히더라도, 사회정의를 똑바로 세우고 칼같은 개혁을 해주기를 바랬거든.
조선일보 폐간, 전두환 저택에 경찰 특공대 투입, 경찰에게 폭력 휘두르는 한기총 목사나 가스통 할배 현장사살, 비리검찰 모조리 구속, 삼성 그룹 분해 뭐 이런 조치들 말야.
그러면 어떻게 할까?
곽노현은 사퇴할 필요가 없다고, 무죄추정이라고 우기자.
그랬다가 다음번에 수구 꼴통 흉물이 비슷한 스캔달에 걸리면 어떻하냐고? 당연히 사퇴를 요구해야지.
그때가서 한나라당이 진보진영의 이중적 태도를 비난하면 어떻하냐고? 뭘 어떻하긴 어떻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고, 둘 사건은 비슷하지만 다르다고 주장해야지.
말이 안된다구? 안되면 어때, 저쪽 넘들은 맨날 그렇게 하는데 우리만 묵묵히 고귀해지자구?
이젠 도저히 그짓도 지겨워서 못하겠다. 아이러니하지만 괴물과 싸울려면 나도 괴물이 되야한다.
맹수와 싸우려면 나도 맹수의 이빨과 발톱이 있어야한다.
승리하고 나서 괴물이 된 자신과 또다시 싸워야겠지만, 건강한 정신만 잘 지켜내면 괴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마치 화가 풀린 헐크가 원래대로 돌아가듯이.
그렇지만 우리에겐 진중권도 필요하다. 그래야 필요할때 알리바이가 성립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래야 나중에 우리가 괴물에서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모두 힘내자구. 1년(레임덕 계산시 6개월) 남았다, 씨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