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나 죽겠다.
왜 짜증이 나냐고? 이넘의 FTA라는 넘은 워낙에 방대하고, 관련된 문제점도 이루 다 언급하기 힘들정도로 다양하며, 이 사건을 둘러싼 우리 정치권의 움직임들, 그 역사 까지도 워낙에 복잡 다단해서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한다는 것이 말 그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내용은 또 완전 국가간 무역, 국제 경제, 양국의 사회 경제체제, 각종 추상적인 표현들로 가득차 있어서 천페이지가 넘는 관련 문서들을 한번 훑어 보는 것 조차 불가능하기도 하고.. 하여간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짜증 덩어리가 된다.
근데, 근본적으로 뭔가 불안하다. 시바.. 이거 진짜 좆되는거 아닌가.
이 정도면 그래도 참을만 하다. 가카가 추진하는 거, 아주 단순하다. 가카가 하면 무조건 개같은 짓거리라 봐도 별로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씨바, 이 FTA 라는 넘은 노무현의 참여정부때 시작된 거다. 가카가 하는 개같은 짓거리가 그 참여정부때 시작되었다고? 이런 젠장..
헷갈리기 그지없다. 이 쯤되면 인지부조화 비슷하고 데자뷰 같기도 한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머리속은 혼란스럽게 되고, 논리적인 판단은 커녕 그냥 인간적인 믿음, 특히나 노짱에 대한 믿음으로 모든걸 해결해 버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선 안된다.
자, 이제 다시 허리띠를 졸라 매고 덤벼들어 정리를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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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TA의 발단.
확실한 것은 초기 한미FTA 가 미국의 요구로 인해 시작된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오바마 전임 부시는 이 한미FTA를 시들하게 생각했던 거다.
그렇다면 노무현은 왜 미국이 시들해 하는 한미FTA를 먼저 나서서 추진했던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이 부분은 당시의 국제정세를 약간 참고해야 될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얘기를 다 하기는 힘들고, 하여간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시대에는 미국의 위대한 금융위기가 현실을 강타하기 전 시절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이 이 한미FTA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는 홍헌호씨의 의견이 있다.
- 너무 낮은 서비스업 생산성
- 너무 높은 무역의존도
- 너트크래커
도대체 이게 뭔 얘긴지 설명해 보자.
한미FTA
는 근본적으로 프리 트레이드, 자유무역 협상이다. 쉽게 얘기해서 양국간에 무역을 할 때, 관세따위 부과하지 말고, 상대방 국가의 산업이 자국에서 영업하는 걸 방해하지 말자는 협정이다. 이게 핵심이다.
근데 분명히 양국간에는 산업의 수준에 차이가 많다. 전체적으로도 그렇고, 부문별로도 천차만별이다. 그 상황에서 "자유 무역"을 하자.. 그러면 엄청나게 혼란스러운 일이 생기게 된다. 이걸 모두 퉁 치고 자유무역을 하자는게
한미FTA
니 얼마나 복잡하겠나. 그래도 중요한 건들은 있다.
미국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는 서비스업의 수준이다. 물론 농업같은 일차산업도 차이가 나고, 이차 산업의 생산성도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 두 분야의 산업은 이미 과거의 트렌드이고, 미래는 서비스업에서 이기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판단이 2000년대 초반에 분명히 존재했다.
노무현은 여기에 착안을 한거다. 우리의 서비스업이 낙후된 상황에서, 그걸 한순간에 선진국 수준으로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미국의 앞선 서비스업을 직접 끌어들여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국내 서비스업의 수준, 그 중에서도 시스템의 공정성, 뭐 이런 것을 확 올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 핵심에 국내 서비스업 생산성이 너무 낙후되었다는 국내 경제전문가들의 조언이 자리잡고 있다. 경제전문가는 개뿔.. 삼성의 의견이지. (참여정부 초기부터 참여정부의 청와대에 삼성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가고 있다는 얘기는 정설이다. 근거는 각자 찾아 보시라.)
이게 첫번째 너무 낮은 서비스업 생산성이라는 함정에 대한 얘기다.
무역의존도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 무역의존도는 무척 높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니 무역없이 자급자족으로 살 수 없는 나라이며, 어떻게 해서든 국제 경제에 참여해서 무역 실력을 키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이다. 이건 매우 그럴싸하다.
거기에 또 소위 전문가들이 국내 경제의 무역의존도라는 거부하기 힘든 숫자들을 들이대며 참여정부를 압박한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실제로 우리나라 경제의 대외 무역 의존도는 얼마나 될까? 그걸 정확하게 묘사할 숫자는 있을까?
어찌되었거나 당시 그 숫자는 청와대에 프리젠테이션 되었고, 노무현은 성급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애초에 참여정부의 계획은 우리나라랑 맞짱을 뜰만한 나라들과 먼저 FTA를 체결하고 경제의 체질을 강화한 뒤, 최종적으로 한미FTA로 간다.. 라는 로드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노무현이 이 순서를 뒤집어 버린다.
한미FTA
부터 간다.. 라는 걸로.
그렇게 된 배경 중의 두번째 이유로, 너무 높은 무역의존도라는 숫자의 귀신이 있다는 얘길 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호두까기(너트 크래커)에 끼인 호두 신세라는 얘기가 있다.
앞선 미국, 일본과 쫓아오는 중국, 동남아 사이에 끼인 신세라는, 상당히 갑갑하고 두려운 현실상황에 대한 압박감이 강요되었다는 것이다.
여차하면 기껏 쌓아온 우리 경제의 위치가 한참 뒤로 밀릴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며, 그렇게 될 경우 원상 회복조차 하기 어려워 지고 영원히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말이다.
이 세가지 압박스러운 배경 속에서 노무현은
한미FTA
를 초고속으로 추진하기로 맘을 먹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세가지 배경 모두 그리 명확하지 않다. 즉, 반론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자세한 반론은 홍헌호씨의 글을 참고하시고, 간단히 설명하기로 한다.
서비스업 생산성에서 그 생산성이라는 것 자체가 국가 GDP에 의존하는 숫자이기 때문에 GDP가 낮은 나라는 아무리 일을 잘하고 산업체질이 강해도 생산성이라는 숫자가 작게 나올 수 밖에 없다는 이면이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그럴싸한 권위(삼성경제연구소 발 보고서다.. 라는 권위 같은거 말이다.)로 포장된 보고서라 해도 언제나 반론이 가능한 법이지만, 참여정부에는 그런 반론을 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없었다는 얘기다. 아니 청와대 뿐이 아니다. 국내에 없었다.
무역의존도는 아예 가치가 없는 숫자라는 지적이 있다. 학술적으로 정의된 숫자도 아니고, 심지어 국내에서도 기관에 따라 상호 충돌하는 기준의 숫자가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높은 무역의존도라는 것은, 추상적인 판단이 필요한 것이지, 그럴싸한 숫자에 눌려 압박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흔히 얘기할 때, 1억이상의 인구가 있다면 자체 시장이 되고, 뭐 이런 소리에서 과연 1억이라는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확신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너트 크래커는 그야말로 웃긴 지적이다. 전체 국가 중에서, 1위와 꼴찌 국가 빼고 너트 크래커 아닌 국가가 있겠는가?
그런 현란한 어휘는 실상을 묘사하지 못한다. 다만 결정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는 카피일 뿐이다.
이 세가지 문제는 확실히 노무현의 판단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문제들이 현존하는 위협이라기 보다는, 어떤 사안에 대한 양면 의견을 골고루 제공하지 못한 청와대 스탭들의 무능에 의해 발생한 편향된 판단의 근거였다는 얘기가 된다.
어찌되었거나 노무현은
한미FTA
의 초석을 깔았다. 그것도 애초 기획된 로드맵을 엎어가며
한미FTA
를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역사적 실수를 했다.
이 결정에 대해서는 어떤 핑계를 대서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당시 노무현 주변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 모두, 한때라도 노무현을 지지했던 모든 사람들, 현재도 노무현의 후광을 발판으로 정치적 활동을 하는 모두는 이 점에 대해 인정과 반성을 선행해야 한다. 이것은 당연한 얘기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비록 내가 (파병문제와 함께)
한미FTA
문제로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접었다고 얘기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노무현을 내가 만나본 정치인 중 최고의 정치인으로 간주하는 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히 노무현의 실수였다고 지적을 하고, 인정을 하고, 그것을 지지자로써 막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한다. 정말 미안하다.
이렇게
한미FTA
는 노무현의 손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2. 노무현은 한미FTA 체결에 실패했다
결론부터 말해보자면, 노무현은
한미FTA
를 끝까지 추진하지 못하고 퇴임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노무현은 왜
한미FTA
를 체결하지 못하고 퇴임했을까?
노무현은
한미FTA
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과 잃게 될 것을 따져보고 있었다. 그 결과,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조건들을 몇개 제시했다.
- 자동차 관세
- 미국산 쇠고기
- 개성공단 상품
그 조건들은 이 정도일 것이다. 이 밖에도 농민 보호에 관련해서 여러가지 조항을 달기도 했다.
자동차 관세는 사실 노무현이 제시한 조건이 관철되어, 미국에 수출하는 우리나라 차들이 무관세 혜택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 경제에 과연 도움이 될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당장의 한국경제에는 이익이 되는 조항이다.
부시 정권이
한미FTA
에 시들했던 이유도 아마 이 조항이 제일 컸을 것이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는 아주 오래된 고질병이며, 새롭게 미국 시장을 장악해 나가는 한국차에 대한 공포는 미정권에 매우 부담스러운 부분인 것도 사실이다. 물론 한국차가 미국에 수출되는 것 보다 미국에서 현지 생산되는 현기차 브랜드의 차가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는 게 더 큰 문제라는 매우 타당한 지적도 있다.
어찌되었거나 대미수출용 자동차 관세 철폐 조항은 미국입장에선 난감한,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나마 유리한 조항이었다. 결국 이 조항 때문에 노무현 시절, 미국 의회는
한미FTA
를 부결시키고, 참여정부는
한미FTA
체결에 실패한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너무 많이 다루어져 왔기 때문에 다시 얘기하지 않고 넘어간다. 노무현이 제시한 안 조차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다. 하지만 미국의 안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에 있었다. 그냥 가져다 먹어라.. 하는게 미국의 입장이거든.
개성공단의 상품 문제는 좀더 복잡하다.
노무현은 북한의 값싼 인건비와 남한의 기술이 모여 만든 상품은 미국 시장을 점령하는 중국산과 대적할 만한 우리의 무기라고 판단을 했던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그 개성공단의 상품이 활발하게 대미수출에 투입될 때,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는 남북관계에 대한 플랜도 가지고 있던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남북문제의 급속한 호전 문제보다도, 또 하나의 강력한 중국상품이 생길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무척이나 우려를 했던 것이다.
결국 이 세가지 모두 미국이 받아들이기에는 무척 껄끄러운, 그러나 노무현은 반드시 지키고 싶었던, 그런 부분들이다.
노무현은 앞서 얘기했던 세가지 문제들, 서비스업 생산성, 무역의존도, 너트 크래커 문제로 인해 한미FTA를 추진하기로 맘먹으면서도, 우리 사장을 완전 개방해서 미국에게 엄청난 이권을 제공하는 판에 최소한 이 세가지, 자동차, 쇠고기, 개성 문제는 지키고 싶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 이면에
한미FTA
에 담긴 본질적인 독소조항들의 문제는 숨어 있던 것이다.
노무현은 그런 독소조항들까지 다 감수하면서도, 이 세가지 문제를 지키고 싶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것은 꿈에 불과했던 걸로 드러난다.
3. 부하들에게 배신당한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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